지즈코,

편지를 단숨에 읽었어요. 23년 전에도 편지를 쓰는 동안 아주 행복했던 기억이 있는데, 편지 왕래가 주는 독특한 따뜻함과 설렘이 있군요. 그리고 희수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이벤트였군요! 검색해 보니까 희수(喜壽) 77세, 미수(米壽) 88세, 백수 등은 ‘일본인들이 만든 별칭’이라고 나오네요. 일본에서는 우리가 ‘후기 고령자’에 속한다고 했는데, 그저께 여고 동창 카톡방에 누가 그림표를 올렸더군요. 18세에서 45세는 청년, 46세에서 65세는 중년, 66세에서 79세는 장년, 80세에서 99세는 노년, 그리고 100세 이상은 ‘장수 노인’이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직 장년이네요. 하하.

이번에 지즈코가 무대 체질임을 새삼 느꼈습니다. 낯가림 없이 그림 할머니들과 어울려 그림을 그리고, 하루 두 번 이어지는 포럼에 참여하고, 풍악이 울리면 벌떡 일어나 춤추는 모습이 선합니다. 삼일간의 포럼과 잔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건 지즈코의 타고난 무대 체질과 지난 77년간 갈고닦은 기량 덕분이겠지요. 나는 무대보다는 뒤에서 팔짱 끼고 서 있는 편인데, 사람들을 모아 무대를 만드는 일을 좋아하죠. 노년이 되면 그것도 쉽지 않겠지만, 매년 가을 제주에서 페미니스트 축제가 열리면 좋겠어요. 지즈코가 그랬듯, 이 동네에 오면 다들 마법에 홀린 듯 행복해하거든요. 내년에는 한 명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친구와 함께 오세요.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인간이 아닌 존재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할 것 같아요. 한때 인류학을 하는 사람으로 이보다 더 좋은 학문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인류학을 한 것이 축복이 아니라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인간은 참으로 징글징글하게 폭력적인 존재이니까요. 우리 동네 비건 책방 주인, ‘82년생’ 문문은 우울해하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해요. “선생님은 고양이도 안 키우고 덕질도 안 하니 어떡해요?” 이 세대 여성들은 고양이를 키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추앙’하면서 어려운 시대를 잘 버티는 것 같아요. 얼마 전